이 여름에 입단한 선수들로는 임대로 합류한 살바토레 시리구 골키퍼, 플레이메이커 간수, 공격수 루시아노 비에토와 위삼 벤 예데르, 공격 자원 프랑코 바스케스, 미드필더 기요타케 히로시와 파블로 사라비아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전 아스널 및 맨체스터 시티 선수 사미르 나스리를 임대로 영입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듬해 구단 이름에서 울위치를 빼버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스널 FC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1984년, 에우헤니오 몬테스 카베사가 11년 만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목우 사업가이자 부회장으로서 구단 경기장을 몇 차례 개선했던 가브리엘 로하스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1992-93 시즌, 몇 달 동안 진행된 협상 끝에, 세계구급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7.5M의 금액에 건너왔다. 1967-68 시즌, 세비야는 31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지만, 1시즌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했다. 이때 아스널에게 패해 2부 리그로 강등된 그 1부 리그 최하위 팀은 바로 이웃의 토트넘이었다. 이때 49경기 리그 연속 무패 행진도 기록하였는데 이는 영국 축구 최장기 무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 채프먼의 지도 아래 아스널은 1930년, 첫 FA컵 우승과 1930-31, 1931-32시즌 리그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87-81로 앞선 4쿼터 후반 세르비아는 보그다노비치의 연속 득점으로 두 자릿수 리드를 잡았다. 그의 뒤를 이어 세비야 아틀레티코의 감독이었던 마놀로 히메네스가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1985-86 시즌, 마놀로 카르도가 5년 만에 선수단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프란시스코는 1986년 FIFA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로 출전했다. 나바스는 그해 7월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 주역이 되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하자 축구팬들은 대한민국 에이스를 통틀어 양박쌍용(兩朴雙龍)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같은 시즌에 세비야는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던 카를로스 살바도르 빌라르도가 지휘했다. 명장 채프먼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스널은 1933-34시즌, 3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 행운의 사건 이후 아스널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되지 않는 기록을 이어나가게 된다. 두 팀 모두 12경기에서 단 1패만 거뒀입니다. 실제로 두 팀 모두 전자업계의 한일전으로 인해 치열한 경기를 한다. 아스널은 1997-1998 시즌,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으로 더블을 차지하였고, 그와 더불어 99-2000시즌에는 팀 창단 후 처음으로 UEFA컵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아쉽게도 승부차기 끝에 갈라타사라이 SK에게 패해 우승이 좌절되었다. 이후 1970-71시즌, FA컵과 리그 우승 더블을 일궈내게 되었다. 아스널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70-71 시즌에 리그와 FA컵에서 우승하면서 20세기에 더블을 기록한 두 번째 팀이 되었다. 지난 시즌 성인 무대에서 만개하며 9골 9도움을 기록한 흘로제크는 전방에서 다양한 공격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비야는 내전 종전 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전국 무대에서 성공기를 맞이했는데, 1945-46 시즌에 리그를 우승했고, 코파 델 레이도 2번 석권했다. 세비야는 1945-46 시즌에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 리가 우승을 거두었는데, 바르셀로나를 1점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세비야는 그 다음 시즌에 최종전에서 승리로 강등을 면하는데 그쳤지만, 유러피언컵에서는 8강까지 올라가 나중에 우승을 차지한 전 대회 우승을 거둔 레알 마드리드에 패해 탈락했다. 맨유전 승리로 기세를 이어간 포르투는 대회 정상을 차지했고, 당시 포르투 사령탑은 무리뉴였다. 먹튀사이트 캄파날의 조카였던 수비수 캄파날 2호가 당시 코치였던 삼촌을 따라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수비수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개막전에 심장 마비로 쓰러지고, 8월 28일에 별세하면서 시즌이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었다. 세비야는 2006년 8월 25일에 벌어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구단이자 같은 라리가 소속의 바르셀로나를 모나코의 루이 II에서 열린 2006년 UEFA 슈퍼컵에서 3-0 완승을 거두고 우승하면서 2006-07 시즌을 시작했다. 2017-18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세비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기고 10년 만에 대회 결선 토너먼트의 첫 승리를 기록했다. 2014년 5월 14일, 세비야는 벤피카와의 2014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3번째로 대회 정상에 올랐다.


2002년 5월, 로베르토 알레스가 사표를 내고 세비야의 변호사 호세 마리아 델 니도가 회장직에 올랐다. 최장 기간 회장을 역임한 인물은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과 에우헤니오 몬테스 카베사스, 루이스 쿠에르바스 빌체스, 그리고 호세 마리아 델 니도 베나벤테였다. 이후,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사령탑을 맡아 1994-95 시즌을 이듬해 UEFA컵 진출로 마무리지었다. 작사자는 앙헬 루이스 오스키길레아 데 론칼레스이고 작곡가는 마누엘 오스키길레아 데 론칼레스이다. 2010-11 시즌 시작 전, 세비야는 바르셀로나와의 2010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합계 3-5로 패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전은 포르투갈의 브라가에게 져 본선행이 좌절되었다. 세비야는 4종류의 유럽대항전에 참가했는데, "유럽 리그 승자배"(Copa de Europa, 1957-58 시즌), "승자배"(Recopa, 1962-63 시즌), 그리고 14번의 UEFA컵 및 UEFA 유로파리그(1966-67, 1970-71, 1982-83, 1983-84, 1990-91, 1995-96, 2004-05, 2005-06, 2006-07, 2008-09, 2010-11, 2013-14, 2014-15, 그리고 2015-16 시즌)에 참가했다. 이어 조지 앨리슨이 정식 감독으로서 아스널을 이끌게 되었고 부임 첫 시즌 만에 4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 시즌에는 두 번째 FA컵 우승, 37-38시즌 5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78-79시즌에만 경기 종료 직전 골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5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 경기는 명승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8-89시즌에는 막판 극적인 골로 리버풀을 제치고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비센테 칸타토레는 1989-90 시즌을 UEFA컵 예선 진출로 마무리지었고, 오스트리아의 공격수 토니 폴스터가 구단 역대 최다인 리그 33골을 넣었다.